서먼 터커

서먼 터커
Thurman Tucker
Thurman Tucker.jpg
기본 정보
국적 미국
생년월일 1917년 9월 26일(1917-09-26)
출신지 텍사스 주 고든
사망일 1993년 5월 7일(1993-05-07) (75세)
사망지 오클라호마 주 오클라호마시티
신장 178 cm
체중 7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좌타
수비 위치 중견수
프로 입단 연도 1936년
첫 출장 MLB / 1942년 4월 14일
마지막 경기 MLB / 1951년 4월 29일
획득 타이틀
경력


서먼 로웰 터커(Thurman Lowell Tucker, 1917년 9월 26일 ~ 1993년 5월 7일)는 미국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중견수로 활약하였으며, 9시즌 동안 아메리칸 리그시카고 화이트삭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뛰었다. 통산 성적은 701경기에 출전해 타율 .255, 24개 3루타, 9홈런, 179타점을 기록했다. 별명은 "조 E."(Joe E.)였는데, 당대 코미디언 조 E. 브라운과 많이 닮아서 였다.[1]

텍사스 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실로암스프링스 트레블러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을 단계적으로 거친 후, 1941년 시즌 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해 다음해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2년간 화이트삭스의 주전 중견수로 자리를 잡았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군대에 징집되었다. 복귀 후 화이트삭스에서 두 시즌을 더 뛰었고 그 다음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인디언스에서 4년간 활약했으며, 1950년대까지 마이너 리그에서 뛰었다. 은퇴 후에는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와 보험설계사로 일했다.

어린 시절

서먼 터커는 1917년 9월 26일 태어나 텍사스 주 고든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 세 가지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야구에서는 2루수로 뛰었고, 농구육상 선수로 뛰었다. 1935년 졸업 후 세미프로 야구를 뛰었고 아칸소 주 핫스프링스에 있는 야구 학교에 다녔다. 1936년, 18세의 나이에 터커는 아칸소-미주리 리그페이엣빌 베어스와 프로 계약을 했으나 한 경기도 뛰지 않고 2주만에 팀에서 나왔다. 얼마 안되어 같은 리그에 소속된 실로암스프링스 트레블러스와 계약해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2]

마이너 리그 경력

트레블러스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1936년, 터커는 수비 위치를 바꿔 외야수로 나섰다.[2] 117경기에서 .319의 타율과 25개의 2루타를 기록했다.[3] 다음해 코튼 스테이트 리그엘도라도 라이온스에서 뛸 예정이었다. 그러나 허리 부상으로 거의 시즌 전체를 날려버리고 말았다.[2] 부상에서 회복한 후에는 마이너 리그를 전전했다. 1938년 시즌에는 에반젤린 베이스볼 리그애비빌 에이스와 코튼 스테이트 리그의 그린빌 벅스에서 각각 55경기와 50경기를 뛰었다.[3] 1939년에도 코튼 스테이트 리그에 소속된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이너 리그 팀 클락스데일 레드삭스에서 뛰었다. 136경기에서 .298의 타율과 10개의 3루타를 기록했다.[3] 그렇게 마이너 리그에서 계속 몇 년간 뛰던 어느날은 한 감독이 그를 보고 광대 분장을 하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왜냐하면 그가 코미디언 조 E. 브라운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조 E.는 곧 그의 별명이 되었지만, 터커는 평소 진지한 성격이어서 그걸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2]

클락스데일 2년차이던 1940년, 터커는 새로운 변혁의 시즌을 만들어냈다. 6월이 마무리될 때까지 코튼 스테이트 리그에서 .374의 타율로 리그 1위를 달렸다.[4] 모두 97경기에 출전해 .390을 기록한 후, 오클라호마시티 인디언스로 승격되어 40경기를 뛰었다.[3] 시즌이 종료되고 난 후, 그의 활약을 눈여겨 보고 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매니저 빌리 웹은 오클라호마시티로부터 그의 계약을 사들였다.[5] 1941년 시즌 초, 터커는 화이트삭스의 마지막 외야 자리를 얻으려 애썼지만, 데이브 쇼트 등에 밀려 끝내 기회를 얻진 못했다.[6] 그리고 그해 시즌 전체를 오클라호마시티 인디언스에서 보냈고, 로저스 혼스비 아래에서 훈련했다.[7] 141경기에서 타율 .246, 3루타 12개를 기록했다.[3]

1942년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마지막 외야 자리를 놓고 데이브 필리와 함께 경쟁했다.[8] 화이트삭스 경영진은 터커의 수비 능력을 좋게 평가했고, 메이저 리그 로스터의 그의 이름을 집어 넣었다. 그해 4월 14일,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9] 하지만 겨우 두 경기에만 출전 기회를 부여받고, 텍사스 리그포트워스 캐츠로 내려갔다.[10] 시즌 거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며 144경기에 출전, .313의 타율을 기록했다.[3] 마이너 리그 시즌이 끝난 뒤 다시 메이저 리그로 승격된 터커는 화이트삭스에서 그해 시즌 총 7경기를 뛰었다.[9]

시카고 화이트삭스

1943년 시즌 시작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외야진 중에서 유일하게 주전으로 활약하는 선수는 월리 모지스 뿐이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터커는 주전 중견수 자리를 놓고 무스 솔터스와 경쟁을 벌이면서 지미 다이크스 감독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11] 결국 스프링 트레이닝이 끝난 후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고, 팀의 리드 오프를 맡게 되었다.[12]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스타들이 빠져나가 근심하고 있던 윌 해리지 아메리칸 리그 회장은 이러한 그의 활약을 예를 들며, 이제는 이러한 선수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13] 이해 시즌 터커의 인상깊은 활약 중 하나는 7월 26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로, 이날 그는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14] 시즌 135경기에 출전해 타율 .235, 6개 3루타, 79볼넷을 기록했다. 29도루는 아메리칸 리그 3위에 해당했지만, 동시에 17번 도루실패 또한 리그 2위였다.[9]

1944년 시즌 전 해군 입대를 위한 신체 검사를 통과했다. 그해 바로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입대할 것으로 보였지만,[15] 결과적으로 시즌 전체를 뛰었다. 시즌 첫 한 달은 쾌조의 타격을 선보였다. 5월 16일까지 .403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1위를 달렸다.[16] 타격과 수비 실력은 여러 야구 관계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스포츠기자 프레드 리엡은 그를 두고 올해 잠재력을 터뜨린 선수로 평가했고,[17] 지미 다이크스 감독은 그를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외야 수비수라고 언급했다.[18] 6월까지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터커가 타율 .369로, 내셔널 리그에서는 딕시 워커가 타율 .377로 각 리그에서 타격왕 경쟁을 이끌었다.[19] 이러한 활약으로 1944년 올스타 선수 명단에 그의 경력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렸다.[20] 올스타전에서 리드 오프로 나섰으나,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21]

후반기에 들어서 타격감이 무뎌졌다. 7월초 28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타율은 .375에서 .327로 수직하락했다. 이로 인해 리그 타격 1위의 자리를 다른 선수에게 내주었다.[22] 타격 부진이 길어지며 35타수 1안타로 타율이 .320으로 떨어지자, 잠시 휴식을 위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주말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지 않기도 했다.[23] 이후 금방 선발 라인업에 복귀했지만, 시즌 최종 기록은 타율 .287, 6개 3루타로 저조했다.[9]

각주

  1. DuVall, Bob (1971년 7월). “Whatever Became Of....”. 《Baseball Digest》. 81면. 
  2. Vaughan, Irving (1943년 6월 17일). “They Laugh When Tucker Makes Joe Brown Faces, But He's No Joke to Rivals When He Runs the Bases”. 《The Sporting News》. 3면. 
  3. “Thurman Tucker Minor League Statistics & History”. 《Baseball-Reference.com. 2011년 7월 11일에 확인함. 
  4. “Cotton States League”. 《The Sporting News》. 1940년 6월 27일. 11면. 
  5. “Dykes Checks Off For Untouchables”. 《The Sporting News》. 1940년 11월 14일. 5면. 
  6. “White Sox May Worry Other Clubs if New Talent Produces”. 《Schenectady Gazette》. 1941년 3월 14일. 31면. 
  7. Cronley, John (1941년 4월 10일). “Tucker, Back From White Sox, Delights Oklahoma City Fans”. 《The Sporting News》. 8면. 
  8. “White Sox Need Batting Strength If They Are To Be Title Threat”. 《Painesville Telegraph》. 1942년 3월 31일. 7면. 
  9. “Thurman Tucker Statistics and History”. 《Baseball-Reference.com》. 2011년 5월 8일에 확인함. 
  10. “Tucker Released”. 《Christian Science Monitor》. 1942년 4월 28일. 16면. 
  11. “Rookies Hold Key to ChiSox Fortunes”. 《The Palm Beach Post》. 1943년 3월 28일. 14면. 
  12. “Speedy Tucker ChiSox Fielder”. 《Prescott Evening Courier》. 1943년 4월 16일. 5면. 
  13. Fullerton, Jr., Hugh (1943년 6월 2일). “Absence of Stars Means Close Race”. 《Ottawa Citizen》. 14면. 
  14. “Cardinals Continue Pennant March”. 《Lawrence Journal-World》. 1943년 7월 26일. 6면. 
  15. “Briefs From Training Camps”. 《Warsaw Daily Times》. 1944년 3월 23일. 5면. 
  16. “Yesterday's Stars”. 《Sarasota Herald-Tribune》. 1944년 5월 17일. 10면. 
  17. Lieb, Fred (1944년 5월 25일). “Hats Off!”. 《The Sporting News》. 15면. 
  18. “Dykes Thinks Tucker's No. 1 Star of Loop”. 《Ellensburg Daily Record》. 1944년 6월 3일. 6면. 2012년 1월 14일에 확인함. 
  19. “Walker and Tucker Continue To Lead Batters in Majors”. 《Toledo Blade》. 1944년 6월 27일. 19면. 
  20. “Tucker, Grove Win Places on All-Star Team”. 《Chicago Daily Tribune》. 1944년 7월 3일. 11면. 
  21. “July 11, 1944 All-Star Game Play by Play and Box Score”. 《Baseball-Reference.com》. 2011년 8월 16일에 확인함. 
  22. “Babe O'Rourke in Hospital”. 《The Sporting News》. 1944년 7월 13일. 14면. 
  23. “3 Red Sox Holding Spots In League's Top 4 In Batting”. 《Lewiston Daily Sun》. 1944년 7월 18일. 8면. 

바깥 고리